대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몇 주, 졸업 후에 자기 계발 및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React, node 공부, 산업 공부). 하지만 최근 몇 주간 내가 한 것은 꾸준한 운동 (강도는 높지 않았다)과 웹툰을 보고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한 것이 전부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지장이 가는 것을 보니 현재 나는 웹툰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새해 목표를 세운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해당 목표들에 벌써 작심삼일을 했으니 다시 루틴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 "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에서 말했듯이 습관을 바꿀 때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스스로에게 페널티를 거는 것 아닌가? 디톡스를 위해 앞으로 6개월동안 나 스스로에게 웹툰을 보지 않고 게임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할 것이다. 인생은 쉽게 얻을 수 있는 도파민의 노예가 되기에는 너무나 짧지 않은가? 만약에 이 약속을 어길 시에 나는 누나에게 10만 원을 줄 것을 약속했다.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 지 않으면 무의식에 휘둘릴 가능성이 너무 높다. 나의 목표에 가까워지는 데 방해가 되는 distractions 들에는 앞으로 제약을 걸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의미 없는 인생이지 않은가? 누군가는 중독에 빠진 인생인듯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든 우주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티끌만도 못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그냥 재미만을 추구하고, 살아나가는 데만 충분한 돈을 벌고 재미를 쫓으며 살면 안 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행위가 우리를 죽음에 더 가까워지게 하더라도 무슨 상관인가? 우리 모두는 결국 죽는다.
실존주의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한 나도 결과적으로 인생의 정해진 의미는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본질보다는 실존이 먼저라는 실존주의의 주장을 바라보자. 우리에게 정해진 의미가 없지만 (본질이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선택, 행동이 우리 삶의 의미를 만든다. 어떠한 막대기가 있다고 해보자. 이 막대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람을 때리는 데 막대기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때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몸을 지탱하는 데 도움을 주는 데 사용하면 서있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막대기는 존재하게 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자신의 존재를 중독에 빠져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인생을 살고 싶은가, 아니면 이왕 태어난 김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하고 달려가는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고 싶은가? 나는 후자이면 경제적 자유를 이루겠다는 나의 목표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권태주의, 회의주의에 빠진 삶이 무조건 적으로 나쁜 삶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길은 내가 써내려가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며 웹툰을 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나의 인생의 재미가 전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작은 행복을 더 의미 있게 느낄 수도 있다). 우선 웹툰과 게임을 6개월 동안 하지 않는다는 약속으로 제약을 걸고 하루를 되돌아보면서 나 스스로의 책임을 위해 제약을 조금씩 추가해 나갈 것이다. 이 제약들은 결과적으로 내가 자유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 무기가 될 것이다.